파이낸스 조직에서 AI 도입이 유독 더딘 현상은 많은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회계와 재무 부서가 가장 먼저 혁신을 주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인 업무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파이낸스 조직이 직면한 AI 도입의 현실
가상 CFO로 여러 기업들과 협업하면서 목격하는 장면들은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매월 결산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재무팀은 똑같은 엑셀 작업을 반복하며 밤을 지새우고, 정작 중요한 재무 전략 수립이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파이낸스 팀이야말로 숫자와 데이터를 다루는 전문가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데이터 처리의 자동화나 AI 활용에는 가장 소극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에 대한 거부감 때문만은 아닙니다.
재무 데이터의 민감성과 정확성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규제 준수에 대한 책임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조사가 보여주는 기대와 현실의 격차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최근 발표된 여러 글로벌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됩니다.
미국의 유명 벤처캐피털이 운영하는 CFO 자문위원회에서 50명의 최고재무책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다수가 AI 예산을 늘릴 계획이며, AI가 가져올 가치에 대해서도 거의 모든 응답자가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비율은 예상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가트너가 2024년 6월에 실시한 121명의 재무 리더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무 부서의 AI 활용률이 58%로 2023년 대비 21%포인트 증가했습니다.
이는 긍정적인 신호이지만, 여전히 42%의 재무 부서가 AI를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재무 전문가들이 주로 활용하는 AI 도구가 기업용 소프트웨어에 내장된 AI 기능보다는 범용 AI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내부 보고서 작성, 핵심 성과 지표 분석, 계약서 요약, 이메일 자동화 등 비교적 단순한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딜로이트 조사가 드러낸 더 깊은 현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가 3,300명의 재무 및 회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는 더욱 극명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응답자의 78%가 AI 구현이 경쟁 우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답했지만 실제 활용률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여전히 많은 재무팀이 스프레드시트에 의존하고 있으며, AI를 활용한 고급 분석은 극히 일부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격차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AI 기술에 대한 신뢰 부족이 지목되었습니다.
재무 데이터는 기업의 핵심 자산이며 규제 준수와 직결되는 민감한 정보입니다.
따라서 재무 전문가들이 새로운 기술 도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수적인 접근 방식이 디지털 전환 시대에 재무 조직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AI 도입을 위한 전략적 접근법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제시한 CFO 오케스트레이터 모델은 재무 조직의 AI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공합니다.
이 모델의 핵심은 단순히 AI 도구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구조와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것입니다.
BCG 연구에 따르면 핀테크, 소프트웨어, 은행 부문이 AI 리더십이 가장 높은 산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산업의 공통점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문화가 이미 정착되어 있고, 기술 투자에 대한 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다는 점입니다.
재무 조직이 AI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은 파일럿 프로젝트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재무 부서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분야는 지능형 프로세스 자동화(44%), 이상 징후 및 오류 감지(39%), 분석(28%), 운영 지원 및 증강(27%) 순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역들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으면서도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반복적인 분개 입력이나 대사 작업을 자동화하거나, 대량의 거래 데이터에서 이상 패턴을 감지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AI 도입의 장애물과 해결 방안
재무 리더들이 AI 도입과 관련해 직면한 가장 큰 두 가지 과제는 불충분한 데이터 품질과 가용성, 그리고 낮은 수준의 데이터 리터러시와 기술 역량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와 인재 육성의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첫째, 데이터 품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보유한 데이터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통합하고 정제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지만, AI 도입의 필수 전제 조건입니다.
둘째, 인재 육성 측면에서는 기존 재무 인력의 역량 강화와 새로운 인재 영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무 보고에 이미 AI를 사용하는 CFO가 74%이며, 향후 2년 내에 도입할 계획인 CFO가 24%로 나타났습니다.이는 AI 활용 능력이 곧 재무 전문가의 필수 역량이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CFO의 57%가 향후 2년 내에 AI 도입으로 인해 재무 부서의 인력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조사 결과입니다.
이는 AI가 단순히 업무를 보조하는 도구를 넘어 재무 조직의 구조와 역할 자체를 변화시킬 것임을 시사합니다.
실무에 바로 적용 가능한 AI 활용 사례
재무 조직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AI 활용 방안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먼저 월말 결산 프로세스의 자동화부터 시작해볼 수 있습니다.
AI를 활용하면 각종 원천 데이터의 수집과 대사 작업을 자동화하고, 이상 항목을 자동으로 감지하여 담당자에게 알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예측 분석 분야에서도 AI의 활용도가 높습니다.
과거의 판매 데이터와 외부 경제 지표를 결합하여 더 정확한 매출 예측 모델을 구축할 수 있고, 현금 흐름 예측의 정확도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계절성이 강하거나 변동성이 큰 사업의 경우 AI 기반 예측 모델의 효과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비용 관리 측면에서는 AI가 각종 경비 청구서와 영수증을 자동으로 분석하여 정책 위반 사항을 감지하고, 중복 청구나 이상 패턴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또한 공급업체 인보이스 처리 과정에서도 AI를 활용하면 처리 시간을 크게 단축하고 오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내부 통제와 리스크 관리 영역에서도 AI의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샘플링 방식의 감사에서 벗어나 전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잠재적 위험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정 거래 탐지나 규제 준수 모니터링에서 AI의 효과가 입증되고 있습니다.
변화를 주도하는 재무 조직으로의 전환
재무 조직의 AI 도입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조직의 역할과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과정입니다.
과거의 재무 부서가 거래를 기록하고 보고하는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렀다면, AI 시대의 재무 조직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능동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로 진화해야 합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CFO의 56%가 전통적인 재무 영역을 벗어나 더 넓은 비즈니스 자문 역할에 대한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AI가 일상적인 업무를 자동화함으로써 재무 전문가들이 더 가치 있는 전략적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공적인 AI 도입을 위해서는 기술과 사람, 프로세스의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합니다.
최신 AI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고, 새로운 기술에 맞는 업무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또한 변화 관리 측면에서 조직 구성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임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AI 도입은 한 번에 완성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학습과 개선의 과정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작은 성공 사례를 만들고, 그것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접근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입니다.
재무 조직의 디지털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시작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느냐입니다.
AI를 단순히 활용하는 조직에서 AI를 오케스트레이션하는 조직으로 진화할 때, 재무 부서는 진정한 의미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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